2024. 1. 2. 15:39ㆍ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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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맞이하는 것은 정말 조용했다. 매해 점점 더 조용히 맞으려하지만 이번에는 00:00이라는 시간을 보고도 들뜬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해의 첫 날이란 것은 묘해서 사람을 새로운 일을 시작할 힘을 주는 것 같다. 나는 가만히 꼭 해야할 일들 몇 가지를 적어두고 책을 읽었다.
2024년이 오기 전에 2024라는 숫자를 손으로 적어본 일이 없다. 그렇지만 마음 속으로는 몇 번인가 적어본 것도 같다. 매년 새해를 맞이하면 지나간 해를 적어 틀리는 일이 없길 바라면서 연초에는 숫자를 적을 때마다 조금 긴장하게 되는 것 같다. 다이어리의 첫 장이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끝에 숫자를 적을 때 말이다. 연말에는 그동안 구매를 고민하던 블랙윙 연필을 한 더즌 사봤고, 올해에는 연필로 무엇이든 많이 적어보려한다. 언젠가 책을 읽으며 책에도 메모를 하는 날이 올까.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자유롭게 생각을 남기며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굉장히 자유로운 느낌이 들 것 같다.
재작년 아이패드 프로를 사면서 한동안 패드에 기록들을 남겼는데, 아무래도 사진이나 링크들을 이용하기가 편해서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긴하다. 그러나 아날로그 기록에 대한 갈망은 어쩐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아서 새해를 앞둔 며칠 전 결국 몇 년만에 새로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말았다. 일기장보다는 스케줄러에 가까운 것이될테지만 앞장에 좋아하는 엽서를 끼우고나니 그제서야 온전히 내 것이 된 것 같아 좋았다. 딱히 무엇을 적지 않아도 좋았는데, 그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조금은 경계해야 할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무언가를 사기 전엔 엄청 고민을 하다가 배송이 시작된 뒤에는 마음이 조금 식어버리는 그런 일들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올해는 아주 작은 무엇이든 시작한 것은 결과가 어떻든 끝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지면 좋겠다.
새해에는 재미있는 적금을 하나 시작했다. 건너건너 들은 독서적금이라는 것인데 읽은 책의 10%를 모으는 것이다. 얼마나 모일지 또 모은 것을 어떻게 쓰게 될지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지만 내년을 시작할 때에 소중한 힘이 될 것이다. 작년에는 완독하지 못한 책들이 많았는데 적금을 넣고 싶어서 벌써 한 권을 완독했다. 작년 내내 정말 느리게 읽었던 책인데 역시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책의 마지막은 슬프면서도 후련했고, 그러면서도 감정이 북받쳐서 울었다. 내내 읽었던 부분들에 비하면 그 부분은 반의 반 페이지도 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울게 될 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적고, 그 책에 대해 또 적으면 나는 아마 더 오래 그 책을 기억하게 되겠지. 차갑고 흐린 날씨처럼, 물에 물탄 듯 희미하게 시작하는 새해지만 연말과 내년에 돌아봤을 때 행복했던 기억이 많은 해가 되길 바라며.
- 2024.01.02. (이것을 적으며 2023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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