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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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들 :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 / 안그람
여름의 토마토를 좋아한다. 다른 계절의 토마토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지만. 여름과 토마토와 초록색. 나는 그래서 이 책에 끌린 듯도 하다.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은 다섯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만화이다. (책에 만화라고 써있길래.) 차례대로 ‘100Brix’, ‘진지하고 싶지 않은 혜지씨’, ‘공룡의 아이’, ‘녹슨 금과 늙은 용’,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 순이다. 각각 다른 이야기이고,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분량은 점점 늘어난다. 나는 이 책으로 안그람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읽어나갈수록 그의 세계를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처음은 가벼운 (가볍진 않지만) 인사,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진득하게 나눈 기분이라고 할까. 상실, 소망, ..
2024.08.23 -
존재하기 : 벽 / 마를렌 하우스호퍼
1. 벽은 1963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벽의 주인공은 벽 안의 세계에서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적었고, 작가인 마를렌 하우스호퍼는 집안일과 치과의인 남편을 도와 병원 일을 돌보느라 집필에는 하루 세 시간도 내기 힘들었지만 글을 계속 썼다고 한다. 어쩐지 그 또한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적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2. 주인공의 이름은 결국 나오지 않는다. 그는 몇몇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계속 부르지만 자신의 이름은 글에 남기지 않았다. 부를 사람도 없었으나 다시 불릴 것이라 기대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벽에 부딪히기 전까지 그런 세상은 상상해본 적도 없는 주인공처럼. 책을 읽는 내내 상상한 장면들에서 움직인 것이 주인공이었을까 나였을까. 3. 벽..
2024.01.04 -
조용히 2024년을 맞으며
- 2024년을 맞이하는 것은 정말 조용했다. 매해 점점 더 조용히 맞으려하지만 이번에는 00:00이라는 시간을 보고도 들뜬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해의 첫 날이란 것은 묘해서 사람을 새로운 일을 시작할 힘을 주는 것 같다. 나는 가만히 꼭 해야할 일들 몇 가지를 적어두고 책을 읽었다. 2024년이 오기 전에 2024라는 숫자를 손으로 적어본 일이 없다. 그렇지만 마음 속으로는 몇 번인가 적어본 것도 같다. 매년 새해를 맞이하면 지나간 해를 적어 틀리는 일이 없길 바라면서 연초에는 숫자를 적을 때마다 조금 긴장하게 되는 것 같다. 다이어리의 첫 장이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끝에 숫자를 적을 때 말이다. 연말에는 그동안 구매를 고민하던 블랙윙 연필을 한 더즌 사봤고, 올해에는 연필로 무..
2024.01.02 -
기억의 순간 : 파과 / 구병모
1. 파과라는 제목의 울림이 좋았다. 소리 내어 말하면 어쩐지 깨진 복숭아의 향이 날 것만 같은. 구병모 작가는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으깨진 과일이라는 뜻으로 쓰기 시작했고, 결말을 내고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짚어보니 여러 뜻을 담기 위해 중의적인 의미로 한자를 넣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복숭아 표면의 짧은 솜털과 옅은 분홍과 붉은색이 섞인 그 단 것을 떠올렸다. 아마도 표지의 색상이 한몫했을 것이다. 2. 킬러의 이야기는 흔하다. 그러나 여성 킬러는 드물다. 그것도 노년의 여성은 더더욱 본 적이 없다. 조각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새롭다. 지하철이라는 익숙하고 지루한 공간을 순식간에 생각지도 못한 공간으로 재창조한다. 하지만 조각은 일을 할 때 빼고는 어쩐지 서툴러 보인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
2023.04.14 -
내가 사랑하는 것들 : 재와 물거품 / 김청귤
- 짙은 파란색의 표지와 재와 물거품이라는 어딘지 접점이 없으면서도 같은 속성을 가진 단어들로 이루어진 제목에 이끌려서 이 책을 집었었다. 재와 물거품. 무언가 존재가 잡힐 듯하면서도 사라질 것만 같은 것. 보이지만 어딘가 허무한 느낌을 주는 것들. 그 자체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과정의 순간 같은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고 매료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잊히지 않아 몇 번을 읽었고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1. 재와 물거품은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인어인 수아와 인어의 사랑이자 구원인 마녀 마리. 인어는 마녀를 구원하고 마녀는 인어를 구원한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한다. 서로의 구원이다. 서로가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은 사랑이다. 2. 마녀는 무녀였다. 무녀들은 대..
2023.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