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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들 :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 / 안그람
여름의 토마토를 좋아한다. 다른 계절의 토마토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지만. 여름과 토마토와 초록색. 나는 그래서 이 책에 끌린 듯도 하다.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은 다섯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만화이다. (책에 만화라고 써있길래.) 차례대로 ‘100Brix’, ‘진지하고 싶지 않은 혜지씨’, ‘공룡의 아이’, ‘녹슨 금과 늙은 용’,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 순이다. 각각 다른 이야기이고,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분량은 점점 늘어난다. 나는 이 책으로 안그람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읽어나갈수록 그의 세계를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처음은 가벼운 (가볍진 않지만) 인사,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진득하게 나눈 기분이라고 할까. 상실, 소망, ..
2024.08.23 -
동화의 원작 : 인어공주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어렸을 적부터 왠지 모르게 좋아하던 동화 중 하나는 인어공주였다. 커서는 살면서 하나씩 왜 그 이야기를 좋아할 수 있었는지 선명히 알게되는 순간들이 좋았다. 예를 들자면 우선 인어공주는 비록 남성 작가가 쓴 이야기지만 여성의 이야기인게 좋았고, 인어라는 환상의 존재인게 좋았고, 페미니즘 책을 읽다가 깨닳았는데 ‘목소리’ -목소리에 대해선 언젠가 다시 쓰고 싶다.- 를 다룬단 점이 좋았다. 원작에서는 인간이 되는 약을 만들기 위해 혀를 재료로 하면서 마녀에게 목소리를 준다. 사실 원작의 마녀는 나쁜 존재가 아니다. 으스스한 곳에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 나쁜 인상을 주지만 인간이 되고 싶다고 찾아온 인어공주에게 미리 예상되는 나쁜 것들을 다 말해주고 후회할 것이란 점도 알려준다. 인어공주가 자신의 말을 듣지..
2024.04.17 -
흘러넘치는 마음으로
독서 기록용으로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막상 블로그에는 글을 거의 적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그러려는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지만, 디지털 기록과 아날로그 기록의 사이에서 한동안 다시 연필로 쓰는 재미를 떠올린 것도 있다. 하얀 종이에 사각사각 생각이 떠오르는대로 적고 연필을 깎으면 다시 예리해지는 심과 나무의 향이란. 그래서 적는 과정이 더 즐거웠다. 또 적는다는 행위가 신기한 것이 마냥 한 가지를 적다가도 생각보다 먼저 손으로 흘러나오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가려고 했던 곳보다 한 걸음 더, 전에 있었지 이런 비슷한 게…? 하면서 적어내려가는 즐거움이란. 새로운 학기가 되면 새 공책을 사는 취미만 있던 사람인데 책 몇 권을 읽고나니 오래 가지고 있었던 공책이 적어내린 글로 가득해졌다. 공책을 채웠으..
2024.03.30 -
꿈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
- 2024.01.11.의 꿈. 새벽에 자다가 깨서 꿈처럼(꿈이던가?) 떠오른 장면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것이 부풀어오르고 그 안에선 눈들이 자라나서 모든 것이 깜빡이며 눈을 뜬다. 하얀 벽은 저멀리 팽창해 멀어져가고, 짙은 나무색의 긴 식탁 위에는 커다란 타원형의 하얀 도자기 접시. 그 위에 하얗고 커다란 푸딩케이크. 역시나 그릇처럼 타원형이다. 케이크엔 노란 민들레가 장식처럼 꽂혀있고, 창 밖으론 검은 우주에 커다란(거대한) 별들이 반짝인다. 나는 집에 있는데, 여기가 우주던가. 문득 민들레꽃을 본지 너무 오래란 생각이 들었다. - 꿈을 정말 자주 꾸는 편인데, (사실 자주라기보다도 안 꾸는 날이 드문 편이긴하지만) 요즘은 일어나면 금방 휘발되어 잘 기억하진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2024.01.11 -
존재하기 : 벽 / 마를렌 하우스호퍼
1. 벽은 1963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벽의 주인공은 벽 안의 세계에서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적었고, 작가인 마를렌 하우스호퍼는 집안일과 치과의인 남편을 도와 병원 일을 돌보느라 집필에는 하루 세 시간도 내기 힘들었지만 글을 계속 썼다고 한다. 어쩐지 그 또한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적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2. 주인공의 이름은 결국 나오지 않는다. 그는 몇몇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계속 부르지만 자신의 이름은 글에 남기지 않았다. 부를 사람도 없었으나 다시 불릴 것이라 기대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벽에 부딪히기 전까지 그런 세상은 상상해본 적도 없는 주인공처럼. 책을 읽는 내내 상상한 장면들에서 움직인 것이 주인공이었을까 나였을까. 3. 벽..
2024.01.04 -
조용히 2024년을 맞으며
- 2024년을 맞이하는 것은 정말 조용했다. 매해 점점 더 조용히 맞으려하지만 이번에는 00:00이라는 시간을 보고도 들뜬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해의 첫 날이란 것은 묘해서 사람을 새로운 일을 시작할 힘을 주는 것 같다. 나는 가만히 꼭 해야할 일들 몇 가지를 적어두고 책을 읽었다. 2024년이 오기 전에 2024라는 숫자를 손으로 적어본 일이 없다. 그렇지만 마음 속으로는 몇 번인가 적어본 것도 같다. 매년 새해를 맞이하면 지나간 해를 적어 틀리는 일이 없길 바라면서 연초에는 숫자를 적을 때마다 조금 긴장하게 되는 것 같다. 다이어리의 첫 장이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끝에 숫자를 적을 때 말이다. 연말에는 그동안 구매를 고민하던 블랙윙 연필을 한 더즌 사봤고, 올해에는 연필로 무..
2024.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