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1. 23:33ㆍ서가

1. 꿈을 많이 꾼다. 꿈이 없이 잠드는 날이 드물 정도로. 새로운 해를 시작할 때마다 일기는 며칠 못 쓰고 그만 두는 반면 자고 일어나 기억에 남은 꿈 자락을 기록하는 것은 의외로 드문드문 끊이지 않고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꿈의 색채를 따지자면 새벽의 바다 같은 짙고 푸른 빛. 불이 꺼진 듯 어두워 한 톤 더 내려간 분위기는 꿈에서 깨어나서야 매번 깨닫는 것이다. 그 안에서는 그리운 것도, 기억하지 못했던 것도,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잘게 부서지고 섞여 새롭게 하나의 밤을 삼킨다. 나는 매일 밤 침대보다는 꿈의 자락에 감겨 눈을 감는다.
2. 어떤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건 그때의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건지, 그때 인지했던 그 사람의 이미지를 그리워하는 건지 종종 고민한다. 우리가 인지하는 이미지는 올바른 것일까. 나조차도 내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가끔 의도를 갖더라도 그것이 올곧게 전해질지 가늠할 수 없는데. 때로 내가 그리워한 사람은 그 사람이 남긴 그림자 위에 내가 마음대로 그려 넣은 또 다른 존재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 존재 위를 새롭게 덧그리고, 꾸며서 마침내 그림자조차 아닌 것으로 만들어 그 그리움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조차 모르고 그리워하는 건 아닐지. 너무 씁쓸한 맛의 상상일까.
3. 어느 시집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쭉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뭉쳐진 문장의 덩어리들은 시였지만 시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시를 쓴다는 건 사무치는 문장들을 옅게 펼쳐두는 일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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