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있길 바라는 : SF보다 Vol. 1 얼음 / 곽재식, 구병모, 남유하, 박문영, 연여름, 천선란

2023. 4. 30. 22:56서가




  1. 매년 계절을 맞으면서도 새로운 계절이 올 때마다 낯설다. 이맘때면 날씨가 어땠더라. 언제부터 덥고, 언제부터 추웠지. 환절기에는 반소매부터 제법 두터운 겉옷까지 입은 사람들의 속에서 걸으며 지금 다들 어떤 계절을 느끼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올해는 이상 기후 속에 꽃이 다 이르게 개화했다는 뉴스를 들은 기억이 있고 그래서 제법 이른 더위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2. 갑자기 공포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그것은 더위와 함께 오는 생각이다. 밖은 덥지만 어쩐지 긴장으로 차가워지는 등과 목덜미를 느끼며. 아직 공포영화가 오기엔 이른 때다. 겁이 많으면서도 호기심도 많아서 제법 본 공포영화도 많은데 본 것들은 이미 너무 여러 번 보아서 또 보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김빠지는 애매한 공포를 느끼고 싶지도 않아서 OTT 앱들의 영화 포스터들만 내내 구경하고 있었다.

  3. 단편집의 주제가 얼음이었던 것은 우연이었고, 이런 방향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포영화를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가제본에 담긴 6편의 글들은 얼어붙어 멈춘 어느 순간으로, 얼음에 덮인 산으로, 상식이 뒤엎어진 추위의 세계로, 도망치고 싶은 순간으로, 영하의 지하실로, 가본 적 없지만 그리운 곳으로 데려가 주었다. 종종 이는 소름에 아마도 그 순간 체온을 재었더라면 정말로 몇 도쯤은 떨어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4. 각각의 이야기가 다른 의미로 와닿았지만 읽으며 내내 떠오른 것은 녹아내린 빙하에 잠겨 그 차가운 심연 아래에 담기는 상상이었다. 이 순간 정말로 그런 나라들도 있고. 흔히들 땅이 물에 잠긴다면 바다에 인접한 해안가부터 잠길 거란 상상을 하곤 하는데, 실제로는 지하수도 함께 차오르기 때문에 지면이 낮은 곳부터 어디든 공평하게 함께 잠길 것이다. 자연이란 그런 것이니까. 인간의 기술은 아주 잠시 재난을 막겠지만 곧 지치지 않는 자연 앞에 손을 들 것이다. 어쩐지 아직은 닥쳐오지 않은 미래를 눈앞에 보여준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냉동실에 들어앉은 듯 서늘했다. 금방이라도 어느 문이라도 열고 밀어닥칠 재난 같아서.

  5. 명확히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은 편한 것일까 공포일까. 운명적이라는 말은 어쩐지 낭만적인 성격이 있지만 어떤 측면에선 벗어날 수 없는 속박 같기도 하다. 이미 모든 것은 정해져 있어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도 그 발버둥까지 태초에 쓰여 있으리니. 생각해 보면 이야기의 성격은 쓰는 자보다는 받아들이는 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6. 신인 줄 알았는데 신이 아니었던 이야기. 구병모 작가의 채빙은 냉동 보관된 인간이 신으로 추앙받고, 긴 시간이 흘러 발견되는 내용이다. 신들이 나오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전능해서가 아니라 신이면서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감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이야기들조차 인간들이 만들어 냈기 때문이겠지만. 우리들도 그렇다. 지구를, 우주를, 자연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고 인간들은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주인공처럼 얼음 속에 얼어붙어 있는 채로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들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7. [어떤 침묵은 세상 어느 긴 말보다 훨씬 거대한 대답이다.] - 차가운 파수꾼, 연여름

  8. 그리하여 바라건대 나는 이 책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이 앞으로도 계속 얼어있기를 바란다. 녹아내려 현실로 흘러나오지 않기를. 소설이라는 상상 안에 머물러서 내내 볼 수 있는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 어떤 상상들은 황홀해서 경험해 보길 바라지만 어떤 상상들은 무서워서 거리를 두고 싶어지니까. 이 차가운 상상들이 활자 속에서만 존재해서 현실에서 만져지지 않기를, 책을 덮고 서평을 쓰며 바란다.



SF보다 Vol 1 얼음
독자의 환상적인 사유를 자극하는 문학과지성사의 새 기획, 〈SF 보다〉가 독자들 앞에 첫선을 보인다. 철에 따라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을 소개하는 〈소설 보다〉와 1년에 한 번 한국 시의 축제를 여는 〈시 보다〉를 펴내며 한국문학의 최전선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와 독자를 발 빠르게 연결해온 문학과지성사가 새롭게 시작하는 세 번째 ‘보다’ 시리즈이다. 작가 복거일, 듀나, 조하형, 배명훈, 김이환, 황모과 등의 책을 출간하며 한국 SF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문학과지성사는 이제 〈SF 보다〉를 통해 문학의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혀나가고자 한다. 동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를 바탕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들의 눈부신 상상력이 가득 담기게 될 이 시리즈는 테마와 다각도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와 여섯 편 이상의 단편소설, 장르 전반을 아우르는 크리틱으로 구성되며, 상반기와 하반기에 나눠 1년에 두 권 출간될 예정이다. SF 스토리텔링의 선두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작가 문지혁, SF를 향한 애정으로 국내외 작품들을 누구보다 꼼꼼하게 읽고 쓰는 SF 비평가 심완선이 〈SF 보다〉의 기획위원으로 함께한다. 명실상부 동시대 SF문학의 현장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작가와 비평가이기에 그들이 안내할 앞으로의 여정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SF 쓰기가 인간과 물질과 시공간을 둘러싼 미지의 잠재성을 실현시키는 일이라면, SF 읽기는 그 세계의 예측 불가능성을 경험하는 일이다. Science, Space, Speculative, Society 등의 수많은 ‘S(story)’와 Fiction, Fantasy, Fabulation, Future 등의 다채로운 ‘F(frame)’가 열어 보이는 〈SF 보다〉의 독서 공간은 ‘낯선’ 경험을 만끽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그곳에서 독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리얼리즘과 재현이라는 경로를 벗어나, 장르가 다져온 ‘바깥’의 길”(심완선)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저자
곽재식, 구병모, 남유하, 박문영, 연여름, 천선란
출판
문학과지성사
출판일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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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보다 Vol. 1 얼음 서평단

- 소설의 가제본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SF와 좋아하는 작가들의 조합이라니 어떻게 읽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첫 주제는 얼음이다. 따뜻한 이야기들도 좋지만 어쩐지 차가운 것에 본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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