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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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세계 : 팔꿈치를 주세요 / 황정은, 안윤, 박서련, 김멜라, 서수진, 김초엽
- 읽고 싶은 날 한 편씩 천천히 읽었다. 모든 글들이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날씨의 기억과 함께 떠오른다. 어떤 글은 눈물이 나고, 어떤 글은 낯선 세계를 만난 것처럼 설레고, 어떤 글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1. [사랑을 믿는다고, 내가 어떻게 단숨에 말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지금아.] / 올빼미와 개구리, 황정은 2. [묵자는 만져지지 않는다. 묵자는 검기만 하다.] 3. [울 필요가 없을 뿐인데 벙어리라니.] 4. [그러나 어느 날 피아노 줄이 탕, 결연한 소리를 내며 끊어지는 순간처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르는 관성이 끊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 모린, 안윤 5. [손과 무릎 사이의 온기로 손끝에서부터 녹아 없어지는 나를, 나의 젤로를 상상했다. 네가 사랑하..
2023.12.17 -
얼어있길 바라는 : SF보다 Vol. 1 얼음 / 곽재식, 구병모, 남유하, 박문영, 연여름, 천선란
1. 매년 계절을 맞으면서도 새로운 계절이 올 때마다 낯설다. 이맘때면 날씨가 어땠더라. 언제부터 덥고, 언제부터 추웠지. 환절기에는 반소매부터 제법 두터운 겉옷까지 입은 사람들의 속에서 걸으며 지금 다들 어떤 계절을 느끼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올해는 이상 기후 속에 꽃이 다 이르게 개화했다는 뉴스를 들은 기억이 있고 그래서 제법 이른 더위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2. 갑자기 공포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그것은 더위와 함께 오는 생각이다. 밖은 덥지만 어쩐지 긴장으로 차가워지는 등과 목덜미를 느끼며. 아직 공포영화가 오기엔 이른 때다. 겁이 많으면서도 호기심도 많아서 제법 본 공포영화도 많은데 본 것들은 이미 너무 여러 번 보아서 또 보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김빠지는..
2023.04.30 -
SF보다 Vol. 1 얼음 서평단
- 소설의 가제본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SF와 좋아하는 작가들의 조합이라니 어떻게 읽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첫 주제는 얼음이다. 따뜻한 이야기들도 좋지만 어쩐지 차가운 것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나는 조용히 적힌 제목들부터 기대가 됐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서 우리에게 다가올까. SF보다 Vol 1 얼음독자의 환상적인 사유를 자극하는 문학과지성사의 새 기획, 〈SF 보다〉가 독자들 앞에 첫선을 보인다. 철에 따라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을 소개하는 〈소설 보다〉와 1년에 한 번 한국 시의 축제를 여는 〈시 보다〉를 펴내며 한국문학의 최전선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와 독자를 발 빠르게 연결해온 문학과지성사가 새롭게 시작하는 세 번째 ‘보다’ 시리즈이다. 작가 복거일, 듀나, 조하형, 배명훈, 김..
2023.04.20 -
기억의 순간 : 파과 / 구병모
1. 파과라는 제목의 울림이 좋았다. 소리 내어 말하면 어쩐지 깨진 복숭아의 향이 날 것만 같은. 구병모 작가는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으깨진 과일이라는 뜻으로 쓰기 시작했고, 결말을 내고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짚어보니 여러 뜻을 담기 위해 중의적인 의미로 한자를 넣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복숭아 표면의 짧은 솜털과 옅은 분홍과 붉은색이 섞인 그 단 것을 떠올렸다. 아마도 표지의 색상이 한몫했을 것이다. 2. 킬러의 이야기는 흔하다. 그러나 여성 킬러는 드물다. 그것도 노년의 여성은 더더욱 본 적이 없다. 조각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새롭다. 지하철이라는 익숙하고 지루한 공간을 순식간에 생각지도 못한 공간으로 재창조한다. 하지만 조각은 일을 할 때 빼고는 어쩐지 서툴러 보인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
2023.04.14 -
내가 사랑하는 것들 : 재와 물거품 / 김청귤
- 짙은 파란색의 표지와 재와 물거품이라는 어딘지 접점이 없으면서도 같은 속성을 가진 단어들로 이루어진 제목에 이끌려서 이 책을 집었었다. 재와 물거품. 무언가 존재가 잡힐 듯하면서도 사라질 것만 같은 것. 보이지만 어딘가 허무한 느낌을 주는 것들. 그 자체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과정의 순간 같은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고 매료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잊히지 않아 몇 번을 읽었고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1. 재와 물거품은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인어인 수아와 인어의 사랑이자 구원인 마녀 마리. 인어는 마녀를 구원하고 마녀는 인어를 구원한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한다. 서로의 구원이다. 서로가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은 사랑이다. 2. 마녀는 무녀였다. 무녀들은 대..
2023.04.08 -
류이치 사카모토를 기억하며
뒤늦게 류이치 사카모토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들었다. Merry Christmas Mr.Lawrence. 언제 어떤 식으로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었는지, 어떤 곡을 처음 들었었는지는 지금에 와선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말하는 것도 어색해진 MP3에 항상 그의 앨범과 곡들이 있었던 기억은 선명하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듯 그렇게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 한 곡씩 아주 오래, 오래 들었다. Merry Christmas Mr.Lawrence를 듣다 보면 어딘가 아련한 느낌에 울고 싶어질 것 같다가도 눈물이 나올 것 같으면 분위기가 전환된다. 그저 내가 울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이 곡을 들을 때면 생각이 정말 많은 나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멍하니..
2023.04.03